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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렁탕 이야기 17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설렁탕’은 크고 작은 식당에서 쉽게 먹을 수 있던 음식이었다. 그러던 것이 요즘은 대중음식점에서조차 맛보기 어려운 음식이 되었다. ‘설렁탕’을 찾는 손님이 많지 않아서인지 몰라도 아예 메뉴에서 빼버린 식당이 많아진 탓이다. 이제 ‘설렁탕’을 먹기 위해서는 ‘설렁탕’만을 전문으로 파는 원조 음식점을 찾아가야 할 형편이다. ‘설렁탕’은 소의 머리, 내장, 뼈다귀, 발, 도가니 등을 푹 삶아 만든 국이다. 먼저 큰솥에 물을 넉넉히 붓고 끓이다가 뼈를 넣는다. 거품이 떠오르면 자주 걷어내고 누린내가 가시도록 생강, 파, 마늘 등을 넣는다. 이어서 살과 내장 따위를 끓는 국에 넣고 국물이 뽀얗게 될 때까지 설렁설렁 끓이다가 뼈는 건져내고 살과 내장은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서 다시 넣는다. 고기가 손으로 뜯어질 정도까지 끓인 뒤에 뚝배기에 진국을 담아 밥과 말아먹는다.

국물이 뽀얗게 되도록 오랜 시간 설렁설렁 끓인다고 하여 ‘설렁탕’의 어원을 ‘설렁설렁’에서 찾기도 하고, 또 국물 색깔이 눈처럼 뽀얗고 국물이 아주 진하다고 하여 설렁탕의 어원을 한자 ‘雪濃(설농)’에서 찾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들은 전형적인 민간 어원일 뿐이다. ‘설렁탕’의 어원은 ‘先農(선농)’에 있다고 보는 것이 통설처럼 되어 있다. 이에는 다음과 같은 역사적 사실까지 곁들여 있어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더구나 오랫동안 학교에서도 그렇게 가르쳐 왔다.

고려 이후 조선조에 거쳐 매년 경칩을 지나 첫 ‘해일(亥日)’이 되면 동대문 밖 보제원(普齊院) 동쪽 마을(지금의 제기동으로 서울대학교 사범대가 있던 자리)에 선농단(先農壇)을 쌓아놓고 농사짓는 방법을 가르쳐 준 ‘신농씨(神農氏)’를 기리고 한 해의 풍년을 비는 제사를 올렸다. 이때 제사에 참여한 임금이 여러 신하들과 함께 친히 밭을 갈고 논에 모를 심는 의식을 거행하였다. 선농단에 제사를 지낼 때에는 소와 돼지를 잡아서 통째로 상에 올려놓았는데 제사가 끝나면 소는 국을 끓이고 돼지는 삶아 먹었다고 한다. 행사에 참가한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음식을 먹어야 했으므로 큰 솥에 국을 끓여 밥을 말아먹을 수밖에 없었다. 이때 소를 잡아서 끓인 국을 ‘선농단’에서 먹은 국이라고 하여 ‘선농탕(先農湯)’이라고 했다. 이것이 변하여 지금의 ‘설렁탕’이 된 것이다.

위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설렁탕’은 ‘선농단(先農壇)’에서 소를 잡아 끓인 국을 먹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물론 ‘선농단’에서 제사의식이 끝난 뒤에 임금이 여러 백성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었을 수 있고, 제상에 올린 소의 고기로 국을 끓였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고깃국을 ‘선농단’에서 끓였다고 하여, 그 국의 이름을 ‘선농’을 이용하여 만들었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탕’이 붙는 ‘갈비탕, 닭탕, 두부탕, 용봉탕, 추어탕’ 등을 보면 ‘탕’ 앞에 그 탕의 재료를 지시하는 단어가 온다는 점에서도 ‘탕’ 앞에 ‘선농(처음으로 농사를 가르친 신)’이라는 ‘신’의 이름이 올 수 있을까 의심이 든다.

일찍이 최남선 선생은 ‘설렁탕’의 ‘설렁’이 몽골어 ‘슈루, 슐루’에서 차용된 말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몽골어 ‘슈루, 슐루’는 고기를 맹물에 삶은 국물을 가리킨다. 이 ‘슈루, 슐루’는 아주 간편히 조리할 수 있는 음식이어서 몽골인처럼 이리저리 떠도는 유목민들에게 제격이다. 몽골인들은 소 두 마리 또는 양, 염소 열두 마리를 통째로 집어넣을 수 있는 큰 가마솥에 물을 넣어 끓인 뒤 고기를 잘게 썰어 넣고 소금을 가미해 끓이는 공탕(空湯)을 즐겼다고 한다. 무엇보다 몽골에서 공탕의 가치는 전쟁터에서 발휘되었다. 전쟁터에서는 수많은 군사들이 한꺼번에 신속히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공탕은 그러한 요구에 잘 부응할 수 있는 음식이었다. 몽골의 군사들은 식기(食器)를 늘 지니고 다니면서 큰 솥에서 끓인 공탕을 받아 재빨리 한 끼를 때웠던 것이다.

몽골 군사들이 전쟁터에서 공탕을 끓여 먹는 것을 보고 고려 사람들도 그와 같은 음식을 만들어 먹었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다른 경로를 통해 몽골의 공탕이 고려에 들어왔을 수도 있다. 음식이 들어오면 그 명칭도 따라오는 것이 원칙이어서 처음에는 ‘설렁탕’을 몽골말로 표현하였을 것이다. 중세몽골어로는 ‘공탕’이 ‘슐런’이었는데, 아무래도 초기에는 이와 유사하게 불렀지 않나 한다. 나중에 한자 ‘탕’을 덧붙여 ‘슐런탕’이라 하다가, 이것이 변하여 지금의 ‘설렁탕’이 된 것으로 판단된다. ‘슐런’이 ‘湯(탕)’이라는 뜻이므로 결국 ‘설렁탕’은 ‘湯(탕)’을 뜻하는 두 단어가 중첩된 동의 중복 형태가 된다. ‘슐런’이 다름 아닌 ‘탕’임을 강조하기 위해 ‘탕’이라는 한자를 덧붙인 것이 아닌가 한다.